자유를 말할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 — 탈레브의 ‘스킨 인 더 게임’으로 본 최진석 사상의 비판적 성찰
서론
오늘날 한국 사회는 자기계발과 인문학 열풍 속에서, 지성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다시 묻고 있다. 그 중심에는 철학자 최진석 교수가 있다. 그는 건명원을 설립하며 ‘주체적 사유’, ‘자유로운 인간’, ‘시대를 이끄는 정신’이라는 이상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의 시각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사유는 일부 중요한 결함을 지닌다. 탈레브는 단언한다. “책임을 지지 않는 말은 위험하다.” 이 글은 최진석 교수의 사상을 탈레브의 기준에 따라 검토하며, 진정한 도덕성과 지성은 리스크 감수와 실천 속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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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의 자유, 실천의 부재 — ‘스킨 없는 담론’의 함정
최진석 교수는 끊임없이 자유인으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그는 인간이 국가나 시대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결정하고 사유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이념적으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탈레브는 경고한다. “스킨 없는 사람들의 고결한 말은 가장 위험하다.”
즉, 아무리 고귀한 이상을 외친다 해도, 그 말이 실패했을 때 본인이 피해를 감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책임 없는 도덕이며, 실천 없는 형이상학이다. 탈레브의 기준에서, 주체적 사유는 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제로 리스크를 짊어질 때만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자유를 말한다면, 그 자유가 가져올 혼란과 고통도 본인이 감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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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엘리트 지식인의 역설 — 책임은 아래로, 권위는 위로
건명원은 한국의 중상류층 지식인들에게 고급 교양을 전파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최 교수는 이 공간을 통해 ‘생각하는 시민’, ‘문화적 자유인’을 육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방식은 탈레브가 비판하는 엘리트주의적 구조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탈레브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지식인 계층이 추상적 이념을 퍼뜨리고, 그 실험의 실패는 고스란히 대중이 짊어지는 사회 구조를 경계한다. 건명원이 지식인의 상징자본을 재생산하고, 그 권위는 높이면서도 실제로 사회적 리스크나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위험 계몽주의’에 불과하다. 건명원이 실제로 만든 자유인은, 자기 몫의 리스크를 지는 개인인가, 아니면 ‘사유’를 통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계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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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측과 비전의 위험 — 실패의 대가는 누가 지는가?
최진석 교수는 철학자의 비전을 통해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과 국가가 스스로의 방향을 설정해야 하며, 더 이상 ‘지시받는 삶’을 살아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탈레브는 복잡한 현실에서 미래를 설계하려는 시도 자체가 교만이라고 본다. 사회는 ‘블랙 스완’으로 가득한 복잡계이며, 어떤 이념이나 비전도 현실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만약 지식인의 비전이 현실에서 실패했을 때, 그 실패의 사회적 비용은 누가 감당하는가? 최 교수는 시대의 방향성을 제시하지만, 그 방향이 틀렸을 때 본인이 어떤 실질적 손실이나 위험을 감수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탈레브는 그런 지식인을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설계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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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최진석 교수는 한국 사회에 철학의 힘을 되살리고자 노력해온 공로가 있다. 그러나 나심 탈레브의 『스킨 인 더 게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사상은 추상성, 엘리트주의, 실천의 부재라는 약점을 지닌다. 진정한 도덕과 지성은 말이 아닌 위험을 짊어지는 실천 속에서 성립한다. 탈레브는 묻는다. “당신이 말한 그 말 때문에, 당신은 무엇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사유의 깊이보다도 책임의 무게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자유는 선언이 아니라, 감수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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