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게임 속의 절망: 베네타의 반출생주의와 진리의 오해
1. 서론: “고통은 진리인가?”
데이비드 베네타(David Benatar)는 현대 윤리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명제를 제기한 철학자 중 하나다. 그의 대표 저작 『존재하는 것이 항상 해롭다(Better Never to Have Been)』에서 그는 출생 그 자체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위이며, 인간을 태어나게 하는 것은 고통을 강제하는 가해라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염세주의나 비관주의를 넘어,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체계를 갖춘 **반출생주의(antinatalism)**라는 입장으로 발전된다.
하지만 베네타의 논리적 정밀함, 고통의 비대칭성 논증, 도덕적 공리주의에 기반한 분석이 아무리 치밀하더라도, 우리는 다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는 과연 ‘진리’를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자기 언어 안에서만 옳은 말을 하고 있는가?”
이 글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류주의(error theory)**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그리고 진화생물학적 관점을 도구 삼아 베네타의 반출생주의를 비판할 것이다. 결론은 단순하다.
베네타는 ‘진리’를 말하고 있지 않다. 그는 단지, 자기의 언어게임 안에서만 유효한 구조물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2. 반출생주의의 언어적 구조
베네타의 반출생주의는 다음과 같은 핵심 전제를 포함한다:
- 고통은 도덕적으로 나쁘다.
- 쾌락의 부재는 도덕적으로 나쁘지 않다.
-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보다 도덕적으로 낫다.
- 그러므로 출생시키는 행위는 비도덕적이다.
이 주장은 철저히 분석철학적 윤리학의 규칙 안에서 제시된다. 명제들은 정확히 정의되고, 논리적으로 전개되며, 공리주의적 직관에 호소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특정한 언어적 전제에 기초한다:
“도덕 명제는 진리값을 가지며, 그 진리는 우리가 발견할 수 있다.”
이 전제가 바로 오류주의자의 비판 지점이다.
3. 오류주의: 도덕 명제는 모두 거짓이다
J.L. 매키의 오류주의(error theory)는 도덕 명제들이 표면상 진리를 말하려 하지만, 실은 모두 거짓이라는 메타윤리적 입장이다.
왜냐하면:
- 도덕 명제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도덕 사실을 주장한다.
- 그러나 그런 도덕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 따라서 "출생은 해롭다"는 명제도,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방식으로는 거짓이다.
베네타의 논리 구조는 내부적으로 일관되지만, 그 기초는 허구적이다. 그는 마치 마법 같은 존재인 ‘도덕적 해로움’을 실재한다고 전제한 뒤, 그것을 토대로 건축물을 쌓는다. 그러나 오류주의자는 묻는다:
“그 ‘해로움’이라는 건 도대체 어디 있는가?
뇌 속에? 사회 관습에? 우주의 법칙에?”
답은 명확하다. 그런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의 언어, 감정, 문화 속에서 형성된 허구적 질서일 뿐이다.
4. 진화론적 문제: 도덕은 언제부터 존재했는가?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생물학적이고 실재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우리가 5억 년 전, 어류와 공통 조상을 지닌 원시 척삭동물이었을 때, 도덕이란 존재했는가?
아니, 그때는 언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는데, "출생은 해롭다"는 명제가 과연 성립할 수 있었는가?
이 질문은 베네타의 주장을 형이상학적 지평에서 현실 세계로 끌어내린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도덕은 인간 종의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발달한 심리적 장치일 뿐이다.
‘죄책감’, ‘공감’, ‘책임’ 같은 감정은 집단 내 협력을 위해 뇌가 진화적으로 발명한 기능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 인간이 나타나기 이전의 지구에 도덕은 없었다.
- 인간 아기가 언어를 배우기 전까지, 도덕 명제는 의미가 없다.
- 도덕은 생물학적 구조 위에서 작동하는 인지적 허구에 불과하다.
베네타는 이런 진화론적 조건을 무시한 채, 마치 도덕이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실체인 것처럼 다룬다. 그러나 그것은 진화의 맥락을 벗어난 초언어적 착각이다.
5.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자
비트겐슈타인은 후기 철학에서 ‘언어게임(language-game)’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의미는 본질이 아니라 사용으로부터 온다고 주장했다. “고통”, “잘못”, “도덕”, “출생”이라는 단어들도 모두 특정한 문화적 맥락과 삶의 형식 속에서 의미를 지닌다.
베네타는 이 언어게임에서 벗어나 모든 존재 일반에 적용되는 도덕 명제를 구성하려 한다. 그는 인간 언어로, 인간 삶 바깥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말하려 한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단언한다:
“윤리적인 것은 말해질 수 없다. 오직 보여질 수 있을 뿐이다.”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
그는 언어 이전의 고통, 진화 이전의 존재, 삶 이전의 윤리를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 허상에 불과하다.
6. 결론: 존재가 없던 시절엔 윤리도 없었다
데이비드 베네타의 반출생주의는 철학적으로 정교하고 도전적인 담론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철저히 구축한 윤리학의 언어틀 안에서만 그 주장을 유효하게 만들 수 있다.
그는 인간의 고통을 설명하려다, 그 설명을 진리로 오인한다.
그는 인간의 정서를 분석하려다, 그 정서를 형이상학적 사실로 간주한다.
하지만 메타윤리학과 진화생물학이 가르쳐주는 것은 분명하다:
- 도덕은 생물학적 진화가 만든 인지적 도구일 뿐이다.
- 인간이 없던 시절엔, 윤리도 없었다.
- 따라서 "출생은 해롭다"는 말은, 삶이 존재하는 언어의 게임판 위에서만 작동하는 말일 뿐이다.
우리는 반출생주의를 철학적 진리가 아니라,
언어적 오해와 진화적 무지의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잘못된 언어적 환상이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조용히 말한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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