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반출생주의자가 아니다: 정언명령과 인간의 불완전성”
“칸트는 반출생주의자가 아니다: 정언명령과 인간의 불완전성”
칸트의 철학에 입각할 때, 그는 반출생주의자로 볼 수 없다. 오히려 그의 도덕철학은 삶의 긍정과 인간 존재의 존엄을 토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출생 그 자체가 해악’이라는 전제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그의 도덕률의 핵심인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은 반출생주의와는 본질적으로 상충한다.
정언명령 중 대표적인 형식은 다음과 같다:
“너 자신과 타인의 인격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 결코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
이는 모든 인간 존재가 그 자체로 목적이라는 칸트 윤리학의 중심 축이다. 인간은 그 존재만으로도 존엄하며, 단지 도구가 아니라 도덕법칙의 자율적 입법자이다. 이런 전제 위에서, 인간의 출생을 단지 고통과 해악의 시작으로 규정하는 반출생주의적 관점은 정언명령에 어긋난다. 출생을 통해 등장한 존재를 필연적으로 '불행한 객체'로 간주하고 존재 자체를 악으로 본다면, 이는 인간을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고통의 매개’라는 수단적 존재로 전락시키는 셈이 된다.
더 나아가, 칸트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간주하며, 도덕적 자율성과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만약 존재 자체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면, 이성적 도덕 행위자에 대한 전제가 무너진다. 출생을 도덕적 해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도덕률도 무의미해지며 칸트 철학 전체의 기반이 붕괴된다.
그렇다면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칸트는 정말 한 인간을 인격으로서 존중했는가?” 이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 중 하나는 칸트의 인종차별적 발언들이다. 그는 흑인이나 비유럽권 인종을 열등하다고 표현하며, 계몽주의의 보편적 인간 개념에서 벗어난 언행을 다수 남겼다. 이는 그가 제시한 정언명령에 위배된다. 인간을 인격으로서 대하라 해놓고, 특정 집단은 열등하다고 본 그의 입장은 자가당착이다. 다시 말해, 그 또한 정언명령의 불완전한 수행자일 뿐, 그 명제를 완벽히 구현한 존재는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칸트의 철학을 도구로 삼되, 칸트라는 인간을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 그의 인종차별적 태도는 그의 사상을 곧이곧대로 윤리적 권위로 삼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며, 더불어 그가 “출생을 악으로 본다”고 주장한 적도 전혀 없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존재 가능성 자체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도덕철학을 세운 사상가이다.
결론적으로 칸트는 반출생주의자가 아니며, 그의 철학은 그 자체로 반출생주의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그의 도덕률은 인간 존재의 긍정과 의무, 그리고 존엄을 전제로 하고, 출생을 부정의 이유로 간주하지 않는다. 칸트는 반출생주의의 철학적 근거가 될 수 없는 인물이다. 그 또한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며, 그의 철학은 인간의 존엄과 존재의 가치를 긍정하는 윤리 체계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