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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의 자유주의 역사관에 대한 옹호

choikwangmo 2025. 6. 8. 15:47

 

인간의 자유를 위한 역사교육: 배민의 자유주의 역사관에 대한 옹호

자유주의적 역사관은 단순한 정치적 입장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신념, 즉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며, 권위나 집단에 복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역사교사 배민의 교육 철학은 이러한 신념의 구체적 실천이며, 이는 우파 자유지상주의, 조너선 하이트의 도덕심리학, 매트 리들리의 진화적 낙관주의와 깊은 철학적 공명점을 가진다.

1. 하이트와의 접점: 도덕적 직관과 개방성의 미덕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The Righteous Mind)』에서 좌파와 우파의 도덕적 기반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진정한 공존은 도덕적 다원주의를 인정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배민은 자신의 신념이 ‘선’이 아니라는 겸허한 인식을 바탕으로, 교실이라는 공론장에서 정치적 신념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이트식으로 말하자면, 그는 "도덕적 진영전쟁"을 지양하고 학생들이 다양한 도덕적 직관에 접속하도록 돕는 ‘가교 구축자’다. 이는 다원주의적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를 교육 현장에서 구현한 사례다.

그의 수업 방식—“이러이러한 해석도 가능하다”—는 하이트가 강조한 도덕 교육의 미덕, 곧 ‘양극화된 담론 속에서 타자의 관점을 상상하는 능력’을 체화한다. 이처럼 배민은 도덕적 개방성과 중립성이라는, 진영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자유주의적 교사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2. 매트 리들리의 낙관주의와 개인의 자율성

『이성적 낙관주의자(The Rational Optimist)』에서 매트 리들리는 시장, 자율, 자생적 질서가 어떻게 인류 발전을 이끌어왔는지를 설명하며,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비판한다. 배민 또한 교과서의 획일화 문제를 지적하며 “시장 독점 뒤에는 늘 정부가 있다”는 통찰을 통해 교육 분야의 과도한 국가 개입을 우려한다. 이는 리들리가 비판한 '계획된 선의의 폭력성'—즉, 국가의 강제적 개입이 오히려 혁신과 다양성을 질식시킨다는 논리와 맞닿아 있다.

배민은 역사 교육의 다양성과 교사 개개인의 자율성을 주장하며, 국가가 역사 서술의 유일한 판단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는 바로 리들리식 자유주의—자율성과 다양성의 자생적 질서에 대한 신뢰—를 교육 현장에서 구체화한 것이다.

3. 우파 자유지상주의의 핵심 가치 실천

배민의 역사관은 좌파적 역사교육이 빠지기 쉬운 “도덕적 독선”과 “집단 중심 역사 해석”을 경계한다. 그는 ‘민족’이나 ‘계급’이라는 거대담론이 개인의 고유한 삶과 복잡한 맥락을 지워버리는 데서 오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러한 입장은 우파 자유지상주의가 강조하는 개인의 자율성과 집단주의에 대한 경계심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교실이라는 공공영역에서 사적 견해를 절제하면서도, 블로그와 책이라는 사적 공간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이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나 밀턴 프리드먼 등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강조했던 공적 권위와 사적 자유의 분리 원칙을 실천한 모습이다. 또한, 그는 ‘다수의 횡포’—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덮거나 이견을 억압하는 행태—에 반대하며, 이는 자유주의 보수주의의 핵심 논리인 헌법적 개인 보호와도 연결된다.

4. 역사는 인간의 이해를 위한 것이지 도덕적 심판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배민은 과거 인물이나 사건을 현재의 도덕적 잣대로 단죄하는 ‘도덕적 역사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그는 “역사의 목적은 인민재판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라고 말하며, 이는 우파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주장해온 역사와 정치의 분리, 그리고 도덕의 절제된 사용이라는 철학과 맞닿아 있다.

조너선 하이트 또한 사람들이 상대 진영을 도덕적으로 비난할수록 갈등은 심화된다고 본다. 배민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실천적 교육방식으로 풀어내며, 학생들에게 다각도의 해석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미덕 윤리적 시민 교육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5. 결론: 역사교육에서 ‘자유’라는 위대한 실험

배민의 교육철학과 역사관은 단순한 개인의 교육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자유지상주의의 보편적 가치가 오늘날의 정치화된 교육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다.

그는 교육을 통해 학생이 이념에 소속되기보다는 이념을 비판하고, 집단에 소속되기보다는 집단을 통찰하는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교육적 태도야말로 조너선 하이트가 말한 **‘이성보다 직관이 앞서는 인간’**을 이해하면서도, 그 이성의 힘을 포기하지 않는 지혜로운 자유주의자의 자세다.

또한 매트 리들리가 강조하듯, 사회 진보는 위로부터 강제된 ‘의도된 선’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솟구치는 자율성과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배민은 그러한 자율의 씨앗을 교실이라는 가장 작고도 중요한 공간에 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배민 교사의 역사교육은 ‘정치 없는 중립’을 가장한 권력의 수단이 아니라, 정치에 물들지 않은 진정한 자유의 실천이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자유주의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행동, 즉 자유를 수업의 중심에 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