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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d of korea

choikwangmo 2025. 6. 3. 17:23

1. “이건 수업이 아니라 연주다”

서울 Y고 2학년 역사 수업.
권형석의 수업은 언제나 늦게 시작된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늘은 좀 세게 간다.
우리가 식민지였다는 건—단지 국권을 빼앗긴 게 아니야.
리듬을 뺏긴 거지.”

칠판에 적힌 글씨:

“근대화 = 박자 강탈”

그는 일본 제국주의를 ‘메트로놈’에 비유했다.
“우리를 강제로 4/4박자로 몰아붙였다고.
우린 원래 고유의 리듬이 있었는데, 전부 잘려나갔지.”

뒤쪽에서 손이 들렸다. 고정민.

“하지만 선생님,
그 박자 안에서 실제로 우리가 얻은 것도 있잖아요.
경제 성장, 문맹률 감소, 도시화…”

권형석은 선글라스를 벗고 천천히 말했다.

“정민아, 넌 지금—
내가 납치됐는데, 납치범이 내게 밥도 주고 책도 줬다고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셈이야.”



2. “이 남자는 왜 이러는 걸까?”

정민은 점점 궁금해졌다.
이 기묘한 교사—권형석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궤변적인 방식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는 걸까?

도서관에서 권형석의 과거를 검색해본다.
1990년대, 그는 젊은 재즈 트럼펫 연주자였다. 《소리 없는 해방》이라는 앨범으로 한때 서울 재즈 씬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 레이블과의 음반 계약이 무산되고,
갑작스레 연주를 그만둔 뒤—교직으로 돌아왔다.

“소리를 뺏기고, 다시 역사를 택한 건가…”

정민은 문득 생각했다.
“혹시 이 사람은,
예술의 언어로 식민지의 불편함을 증명하려는 사람은 아닐까?”



3. 《Kind of Korea》 일부 목차 (정민이 몰래 읽은 원고에서)

1장: 조선은 언제부터 박자를 잃었는가
2장: 철도와 메트로놈 — 왜 그 선로는 자유가 아니었나
3장: 경성제국대학, 그것은 솔로인가 쇼인가
4장: ‘근대화’라는 이름의 서곡 — 근대의 착취적 변주
5장: 해방은 코드 전환이었는가?
6장: 1945년 8월 15일, 드럼 브레이크
7장: 역사란 블루스다



4. “이제 나가주셔야겠습니다”

교장실.
보수 단체의 민원이 빗발쳤고,
권형석이 수업 시간에 《이영훈의 반론》 책을 찢는 퍼포먼스를 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졌다.

“권 선생, 그건 교육이 아닙니다.”
“교육 맞습니다. 그게 문제죠.”
“무슨 말이죠?”
“불편한 진실이 교육이면, 사람들은 항상 편한 거짓을 택하려 하니까요.”

그는 징계를 받는다. 파면.



5. 마지막 수업: 연주

퇴직 전 마지막 수업.

교실에는 긴장이 흘렀다.
하지만 권형석은 트럼펫을 꺼내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첫 음은 끊어졌다.
둘째 음은 낮았다.
셋째 음은 길게 끌렸다.
그리고 정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처럼 똑똑한 애들은 역사를 이해해.
하지만 느끼진 못해.
느끼는 역사만이 사람을 바꿔.
나는 그걸… 연주하려 했던 거야.”

정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6. 사후적 회상: 정민의 글

몇 개월 뒤. 정민은 대학 입학 후 동아리 발표회에서
《Kind of Korea》의 서문을 인용하며 말했다.

“그는 역사에 논리가 아닌 감정을 입히려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처음엔 궤변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식민지는 단지 통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상실감이니까요.”

그는 잠시 멈추고 말했다.

“권형석 선생은 저에게 역사를 암기하는 게 아니라 연주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지금도 제 귓가에 맴돕니다.”



7. 마지막 장면

정민은 《Kind of Korea》의 사본을 도서관 기증함.

책의 마지막 문장.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나는 연주자다.
나는 진실을 정확히 말하진 못했지만,
진실이 이렇게 울릴 수 있다고 연주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