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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보다 의대

choikwangmo 2025. 6. 3. 16:01

1장. 노벨상보다 의대

대한민국. 2030년의 가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윤우석은 그날도 낡은 연구실에서 진동하는 중성미자의 위상 변화와 암흑에너지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논문은 이미 해외 유명 저널 3곳에서 커버스토리로 실렸고, ‘중력장 이론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가도, 언론도, 가족도.
오로지 그의 지도교수, 미국 MIT 출신의 안 드류 박사만이 그를 진지하게 대했다. 어느 날, 안 박사는 그에게 말했다.

“윤, 올해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네 이름이 들어갔어.”

하지만 윤우석은 태연히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 전 이제 그만두려 합니다.”


2장. 서울대생의 배신

윤우석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수석 졸업했고, 병역도 KAIST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대체복무로 마쳤다. 하지만 그가 대학원에 진학한 뒤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월 50만 원의 장학금, 노후한 실험장비, 학회비는 자비, 연구논문은 표절 시비에 휘말릴까봐 모두 영어로 작성, 그럼에도 국가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교통사고를 당해 3일 입원했을 때도 보험조차 들려 있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중학교 친구였던 서하윤은 재수 끝에 간신히 지방 의대에 붙었다. SNS에 올리는 게시물은 늘 같았다.

“지금은 수련 중이에요~ 힘들지만 보람차요💉 #응급실24시 #의사라이프”

그녀는 이제 분당의 한 대형병원에서 레지던트 2년차였다. 그리고 윤우석은 월세 32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삼각김밥을 먹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서 과학자가 아니라 병신이었다."


3장. 수능으로 도피하라

2029년 겨울. 윤우석은 전격적으로 서울대 물리학 대학원을 자퇴하고, 교보문고에서 <EBS 수능완성>을 샀다.
그는 전자기장 방정식도 암기했고, 일반상대성이론도 유도할 줄 알았다. 그러니 수능 물리Ⅱ는 단 4일 만에 만점이었다. 문제는 국어였다.

그는 처음으로 “현대문학”이라는 괴물과 싸워야 했다. “김춘수의 꽃”에서 '그의 존재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네 번이나 철학적 혼란에 빠졌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독서실에서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앉아 있었다.

그리고, 2031년 1월.

“수능 만점자, 서울대 의예과 수석 합격!”

언론은 뒤늦게 그의 정체를 추적했고, 한 유튜버가 알아냈다.

“이 사람, 과거 노벨 물리학상 후보였대요.”

하지만 그 사실이 알려졌을 때쯤, 윤우석은 이미 가발을 쓰고 익명으로 지방 의대 본과 수업을 듣고 있었다.


4장. 인터뷰

한 방송국 PD가 그를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윤우석은 마침내 그 입을 열었다.

“왜 의대에 왔냐고요?
한국에서 과학은 인스타 피드에 사진 하나 못 올려요.
내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해도,
사람들은 피부과 가서 점 하나 빼는 사람한테만 존댓말을 해요.”

그는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벨상은 가족에게 용돈도 못 줘요.”


5장. "그가 사라졌을 때"

윤우석은 서울의 한 지방 의과대학에서 조용히 생화학 수업을 듣고 있었다.
“탈수 반응으로 인한 펩타이드 결합 형성 과정에서—”
교수의 목소리는 물리학을 했던 그의 귀에 하나의 ‘노이즈’로만 들렸다.

그는 단지 의사라는 직업을 얻고, 월세 없는 원룸, 정시 200:1의 존경 속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2032년 10월.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위원회.
위원장 울프 그뢰닝은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202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한국의 윤우석 박사입니다.
그의 논문 ‘Quantum Gravitational Equilibrium in Isotropic Cosmology’는...”

그 순간, 노벨재단에선 수상자 연락을 시도했지만, 아무도 그의 행방을 몰랐다.
한국 언론은 뒤늦게 파악했다.

“윤우석, 서울 XX의대 본과 1학년 재학 중으로 확인”


6장. 세계가 경악하다

뉴욕타임스:

“물리학의 정점을 찍은 그가 왜 해부학 실습을 하고 있나?”

The Guardian:

“노벨상 수상 직후에도 본과 중간고사 준비를 한다고? 진심인가?”

Le Monde (르몽드):

“프랑스에선 불가능한 이야기.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가치 체계를 가졌나?”

CNN 인터뷰에 나온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석좌교수 제프 하이만은 실소했다.

“만약 리처드 파인만이 노벨상을 받고 의대 간다고 했으면 다들 미친 줄 알았을 겁니다.
근데 한국에선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여요. 그게 문제입니다.”


7장. 조롱과 경배

한국의 반응은 복잡했다.
지방의대 학생 커뮤니티엔 이런 글이 올라왔다.

  • “우리학교 학생이 노벨상? 개쩐다”
  • “이제 우리학교 입결 0.3컷 되겠다”
  • “우석이형 과탐 뭐봤대? 생1지1?”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그를 조롱했다.

  • “아싸였구만. 노벨상은 그냥 몰빵한 거고, 결국 의사가 되고 싶었겠지.”
  • “외국에선 박사들이 빌딩 청소도 한다는데 뭘.”
  • “근데 지잡의대인 게 더 웃긴 거 아니냐 ㅋㅋ”

한 유튜브 채널은 ‘윤우석의 두 얼굴’이라는 60분짜리 영상을 올리며 말했다.

“이 사람의 선택은 도피였을까, 혹은 가장 냉정한 이타주의였을까?”

하지만 정작 윤우석은 그 어떤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8장. 해부실에서의 독백

그해 겨울, 윤우석은 해부학 실습 중, 주검 앞에서 스카펠을 들고 멍하니 생각했다.
머릿속엔 양자우주론도, 중력장도, 상대성 시간지연도 없었다.

있었던 건 단 하나.

“이 사람은 뭘 하다가 여기에 누워 있을까?”

그는 이성과 감정이 완전히 분리된 기계처럼 주검의 복부를 절개하고, 장기를 꺼냈다.
의대생들이 떠들었다.

  • “야, 쟤 해부 진짜 잘하지 않냐?”
  • “걔 원래 손재주 좋아.”

그는 웃지 않았다.
노벨상을 받은 그 순간에도, 장기 해부 리포트 제출 마감일을 걱정해야 했던 자신이,
한국에서 ‘살아남는 법’을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9장. 귀국하지 않은 남자

스웨덴 노벨상 시상식에 그는 참석하지 않았다.
스웨덴 대사는 한국에 있는 한 대학병원으로 찾아가 보냈다.

“Mr. Yoon, please, the world is waiting.”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 세계가 기다리든 말든, 전 이번주가 방학 전 마지막 시험입니다.”

그의 빈자리에는 윤우석을 대신해 그의 은사였던 안 드류 교수가 나섰다.
그는 연단에서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만든 가장 역설적인 괴물입니다.
위대한 두뇌가 직업 안정성을 위해 자기를 지웠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 삭제된 삶으로 세계 최고가 되었습니다.”


10장. 무의미의 정상

2033년. 윤우석은 졸업 후 인턴을 거쳐, 수도권의 한 병원에 내과 전공의로 지원했다.
그가 수련의 생활을 시작할 무렵, 일본 도쿄대 물리학과에선 ‘윤우석 방정식’을 전공하는 수업이 개설됐다.
그는 그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무시했다.

그의 인생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병원에 출근하고, 밤 10시에 퇴근했다.
월급은 630만 원.
차는 기아 니로 하이브리드.
휴대폰 배경화면은 병동 실습표.

그의 동기 중 한 명이 물었다.

“형은 예전에 뭐 하셨대요? 이름이 어딘가 익숙해요.”

그는 짧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옛날에, 조금... 쓸모없는 공부를 했었지.”


이 소설은 끝나지 않는다.
윤우석이라는 인물은 사라졌지만, 그가 상징하는 모든 모순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다음 윤우석이 되기 위해 오늘도 수능특강을 펴고 있다.